세운상가, 4차산업 현장 변모 “만들고 싶은 것 다 만드는 꿈의 공간” – 경향신문

‘팹랩 서울’에 가 보니


분주한 제작 실험실 19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 위치한 제작 실험실 ‘팹랩 서울’에서 엔지니어들이 다양한 장비를 이용해 아이디어 구현 제품들을 만들어 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분주한 제작 실험실 19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 위치한 제작 실험실 ‘팹랩 서울’에서 엔지니어들이 다양한 장비를 이용해 아이디어 구현 제품들을 만들어 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19일 오전 세운상가의 광장 공원을 올라가자 ‘세봇’이란 이름의 로봇이 기자를 맞았다. 세봇은 “탱크도 만들 수 있다고 알려진 무림의 고수, 세운상가의 기술장인들이 힘을 합쳐 저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세운상가 5층에 있는 ‘팹랩 서울’로 가기 위해 대학생으로 보이는 방문객 20명이 한꺼번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팹랩 서울은 예비 창업자들을 위한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곳으로 2013년 4월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 결과 스타트업 17곳이 지난 한 달 사이 입주했다. 과거 30년간 쇠락의 길을 걸었던 세운상가는 토박이 장인들과 인공지능·사물인터넷 등 새 기술로 무장한 젊은 장인들이 조화를 이루며 대한민국 최고의 부품상가에서 4차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이곳에서 55년간 전자음향 계통은 거의 대부분 다뤘다는 이승근 수리수리협동조합 이사장(72)은 “화려했던 시절을 겪다가 낙후되는 걸 보면서 여러 번 떠날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를 붙잡고 새롭게 협동조합을 차려 젊은 창업가들과 협업에 나서게까지 한 것은 도시재생사업이었다. 전자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실력 좋은 장인들이 있는 이곳에 재생사업은 날개를 달아줬다. 메디컬 3차원(3D) 프린터 제작업체 아나츠의 이동엽 대표는 “이 동네는 상상만 하면 다 만들 수 있는 곳”이라며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천국”이라고 말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멀리 갈 필요 없이 상가 내 제작소로 도면을 들고가 맡기면 실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곳 토박이 장인들의 실력이 좋아 설계한 대로 잘 나온다며 만족해했다.

팹랩 서울에서 1년 동안 지내면서 제작활동을 하는 레지던스인 강택수씨(27)도 “만들고 싶은 것을 다 만들 수 있는 곳”이라며 “공대생에게는 꿈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그는 지난해 9월 군대 ‘말년 휴가’를 이용해 이곳을 찾았다. 지금까지 컴퓨터 케이스, 아이언맨 마스크, 코르크 컵받침 등 취미 삼아, 재미 삼아 만들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만들었다. 월 15만원의 비용을 내면 재료비 부담 없이 이곳의 시설을 한 달 동안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이날은 LED 쥐불놀이 장비를 마무리 작업 중이었다.

팹랩은 전문 제작자가 아니어도 아이디어만 있다면 3D 프린터나 레이저 커터 등 고가의 장비를 큰 비용 부담 없이 이용해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제작 실험실(fabrication+laboratory)이다. 팹랩은 아이디어를 직접 만들고 공유하는 1인 제작 운동인 ‘메이커 운동’의 확산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국내에도 ‘팹랩 서울’ 등 민간 팹랩 34곳을 포함해 126개가 있다.

강씨를 이곳에 끌어들인 이는 12년 전 칠레에서 한국으로 온 로드리고(34)다. 로드리고는 국내 대기업을 다니다 그만두고 팹랩 서울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팹랩을 시작했을 때 이런 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좋다고 생각해 정부와 손잡고 전국 곳곳에 여러 팹랩을 열었다”며 “제품을 만들다 엔지니어링의 측면이나 코딩에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국내는 물론 해외의 팹랩에 물어봐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로드리고는 세운상가가 변모한 과정을 “예뻐졌다”고 말했다. 그는 “예뻐지니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찾아오고 다리(세운상가~대림상가 사이에 있는 3층 높이의 공중보행교)가 생기면서 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며 “메이커 문화가 더 퍼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날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4차 산업혁명의 현장 답사를 위해 직접 세운상가를 지목해 이곳을 찾았다. 유 장관은 이날 청년 기업가들과의 간담회에서 “세운상가가 도심재생을 통해 실체가 있는 4차 산업의 현장으로 변모해 가고 있는 모습이 좋다”며 “지난 11일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현장을 챙겨보겠다”고 말했다.


원문 보기 :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710192114015&code=920100

“정부가 우리와 비슷한 연구소 만들어 운영하면 어쩌나” – 한국일보

세운상가 공동작업장 ‘팹랩서울’서
창업자들 과기부 장관에게 쓴소리


유영민(왼쪽 맨 앞)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내 ‘팹랩서울’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 메이커스 지원시설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거무죽죽한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난 천장과 어울리지 않게 한쪽 벽의 철제 선반에는 10여 대의 첨단 3D프린터가 놓여 있다. 커다란 작업용 탁자 주위로 고가인 대형 레이저절단기부터 자잘한 공구들까지 모두 갖춘 이 공간은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가동 5층의 ‘팹랩서울’이다.

팹랩은 제조(fabrication)와 실험실(laboratory)의 합성어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시작해 106개국으로 확산된 ‘메이커스’(Makersㆍ다양한 것을 만들며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동 작업장이다. 국내에서는 2013년 4월 문을 연 팹랩서울이 최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유영민 장관이 19일 4차산업혁명의 최전선인 팹랩서울을 찾았다. 메이커스나 이미 창업에 나선 이들은 4차산업혁명의 주무 부처 장관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의 일론 머스크’를 꿈꾼다고 자신을 소개한 오상훈 럭스로보 대표는 “메이커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왜 팹랩이 필요한지 먼저 인식해야 한다”며 “우리 사회 아이들이 창의성보다 지시받은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먼저 배우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제조업체 아나츠의 이동엽 대표는 “4차산업혁명을 위해 제조업과 IT를 융합해야 하는데, 지금은 제조업과 IT가 따로 놀아 어떤 과제가 있으면 이게 과기부 소관인지, 산업부 것인지 따지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꼬집었다.


유영민(오른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내 ‘팹랩서울’ 에서 3D프린팅 뒤 남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안경을 써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참석자들은 정부가 4차산업혁명의 가시적 성과에 급급해 민간에서 이미 시작한 아이템을 모방해 비슷한 것을 내놓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피력했다. 민간에서 시작해 국내에 126개나 생긴 팹랩 중 92개가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모두의연구소 김승일 소장은 “우리 연구소는 누구나 참여해 원하는 연구를 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는데, 정부가 비슷한 연구소를 만들어 운영하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국내 3D프린터 대표 주자 중 하나인 에이팀벤처스의 고산 대표도 “이미 생태계가 존재하는데 정부가 섣불리 개입하면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유 장관은 “정부의 역할을 고민하고 오늘 나온 얘기들을 잘 정리해 지원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2013년 4월 문을 연 국내 최초의 팹랩인 ‘팹랩서울’에서 19일 한 메이커가 작업을 하고 있다.


원문 보기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10191871605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