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공동작업장 ‘팹랩서울’서
창업자들 과기부 장관에게 쓴소리
거무죽죽한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난 천장과 어울리지 않게 한쪽 벽의 철제 선반에는 10여 대의 첨단 3D프린터가 놓여 있다. 커다란 작업용 탁자 주위로 고가인 대형 레이저절단기부터 자잘한 공구들까지 모두 갖춘 이 공간은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가동 5층의 ‘팹랩서울’이다.
팹랩은 제조(fabrication)와 실험실(laboratory)의 합성어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시작해 106개국으로 확산된 ‘메이커스’(Makersㆍ다양한 것을 만들며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동 작업장이다. 국내에서는 2013년 4월 문을 연 팹랩서울이 최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유영민 장관이 19일 4차산업혁명의 최전선인 팹랩서울을 찾았다. 메이커스나 이미 창업에 나선 이들은 4차산업혁명의 주무 부처 장관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의 일론 머스크’를 꿈꾼다고 자신을 소개한 오상훈 럭스로보 대표는 “메이커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왜 팹랩이 필요한지 먼저 인식해야 한다”며 “우리 사회 아이들이 창의성보다 지시받은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먼저 배우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제조업체 아나츠의 이동엽 대표는 “4차산업혁명을 위해 제조업과 IT를 융합해야 하는데, 지금은 제조업과 IT가 따로 놀아 어떤 과제가 있으면 이게 과기부 소관인지, 산업부 것인지 따지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꼬집었다.
참석자들은 정부가 4차산업혁명의 가시적 성과에 급급해 민간에서 이미 시작한 아이템을 모방해 비슷한 것을 내놓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피력했다. 민간에서 시작해 국내에 126개나 생긴 팹랩 중 92개가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모두의연구소 김승일 소장은 “우리 연구소는 누구나 참여해 원하는 연구를 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는데, 정부가 비슷한 연구소를 만들어 운영하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국내 3D프린터 대표 주자 중 하나인 에이팀벤처스의 고산 대표도 “이미 생태계가 존재하는데 정부가 섣불리 개입하면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유 장관은 “정부의 역할을 고민하고 오늘 나온 얘기들을 잘 정리해 지원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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