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인 후보→제조혁신 스타트업 에이팀벤처스 대표로 변신
하드웨어 얼라이언스 출범…자본과 장비 없이도 제조공장 이용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우주선에 들어가는 부품 하나라도 제작할 수 있게 된다면 영광이죠.”
2008년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이 될 뻔 했으나 문턱에서 안타깝게 고배를 마신 고산(42) 씨. 이제는 한국 제조업의 혁신을 꿈꾸는 벤처기업 에이팀벤처스의 대표가 됐다. 지난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고 대표를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만났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짙은 쌍커풀, 다부진 체격의 고 대표는 우주인 선발 과정에서 3만6000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 러시아 가가린 우주비행사 센터에서 훈련 받던 중 기술 유출 의혹을 받고 안타깝게 문턱에서 떨어졌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근무하다 하버드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과에 진학해 과학정책을 펴는 행정가를 준비했다. 하버드 유학 직전에 들른 10주 코스의 실리콘밸리 싱귤래러티대학교(창업지원기관)는 고 대표의 눈을 번쩍 띄웠다.
고 대표는 “최첨단 과학 기술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분위기가 학교에 가득했다”며 싱귤래러티 대학교의 분위기를 묘사했다. 10년에 10억명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찾는 것이 싱귤래러티의 설립 목적이다. 고 대표는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고 대표는 일관되게 제조업의 중요성을 말했다. 고 대표는 “지난 20년간 벤처, 스타트업은 모두 IT였다. PC와 스마트폰. 웹과 모바일은 무주공산이고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그런데 이제 어지간한 플랫폼 사업자들은 다 등장했고 스마트 디바이스 제조에 대한 인식이 우리의 머리속에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고 대표는 한국에 돌아와 먼저 종로 세운상가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시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비영리 창업지원단체 ‘타이드 인스티튜트’를 세우고 팹랩(Fab Lab)을 운영했다. 설계도면만 있으면 제품을 만들 수 있는 3D 프린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고 대표는 이어 “소프트웨어는 결국 하드웨어에 얹혀야 한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는 산업 구조의 90%가 제조업이다. 제조업이 없는 한국은 상상할 수 없다”고 확언했다.
3D 프린터 제조업을 하며 겪은 온갖 어려움은 고 대표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국내에 산재한 중소 제조업체들의 유휴 설비를 모은 플랫폼을 마련했다. 기존의 온라인 3D 프린팅 서비스에 CNC 밀링머신, 레이저 가공기 등 디지털 제조 장비를 더해 영역을 확장했다.
“한국의 제조업체는 오프라인에 산재 돼 있다. 하드웨어를 만들고 싶으면 업체들을 비교 결정을 해야 하는데 처음 만나는 제조 협력업체는 신뢰하기 어렵다. 생각을 바꿨다. 3D 프린터 생산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제조를 하는 그런 회사를 만들자.”
고 대표는 애플과 폭스콘의 비유를 들었다. 애플은 제품의 핵심 가치에만 집중하고 그외 모든 제작은 대만의 폭스콘에서 맡고 있는 식이다. 스마트 웨어러블 장치를 만든다고 가정할때, 의뢰업체는 핵심 소프트웨어 설계에만 집중하면 그외의 모든 것은 에이팀벤처스가 맡아서 한다. 제품 컨설팅, 제작업체 비교 분석·선정, 시제품 제작, 제품 양산까지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장비나 공장을 직접 소유하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고 대표는 말한다. 제조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manufacturing)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다양한 생산 수요를 모으면 국내 제조업체들이 겪는 가동률 부족 문제도 해결하고 글로벌 경쟁력도 갖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고 대표는 최근엔 국내 하드웨어 스타트업 교류 모임인 ‘하드웨어 얼라이언스’도 발족했다. 누적적으로 250개사 정도가 행사에 참여했다. 하드웨어 기반 스타트업에서 CNC(컴퓨터수치제어) 가공 업체, 레이저 가공 업체 같은 곳도 참여토록 유도하고 있다.
고 대표는 “하드웨어 기업은 역시 어렵다(Hardware is hard) 대신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함께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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