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C대학생아카데미] 네 번째 강사 고산 타이드인스티튜트 대표
타이드(TIDE)는 기술(Technology), 상상력(Imagination), 디자인(Design),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영어 단어 앞자리를 따와 만든 단어다. ‘미완의 우주인’으로 알려진 고산(36)이 한국에 돌아와 설립한 청년 벤처 창업을 돕는 회사 이름이다. 우주를 꿈꾸던 그는 어째서 청년에게 손을 뻗게 됐을까.
고산 타이드인스티튜트 대표가 25일 오후 제주대학교 국제교류회관에서 열린 ‘JDC대학생 아카데미’ 강연자로 나섰다. 주제는 ‘도전, 눈부신 시작’.
고 대표는 지난 2007년 전국 3만6000명의 경쟁자를 뚫고 우주인으로 발탁됐다. 당시 서울대 졸업, 국내 유수기업 연구원, 전국 신인 아마추어 복싱선수권대회 동메달을 딴 이력에 훤칠한 외모까지 갖춘 ‘엄친아’로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다.
고 대표는 “훈련을 받으러 러시아에 떠나면서 많은 기자들이 ‘어렸을 때부터 우주인이 되는 게 꿈이었냐?’고 물었다.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꿈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태어나 우주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우주인’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대기업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인터넷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을 찾습니다’라는 광고를 보고 호기심에 지원했다. 우주인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우리나라에서 드디어 우주인을 뽑는구나’ 단지 그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몇 만 명에서 단계를 거듭해 서른 명 쯤 이르자 자신이 뽑힐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단다. “복싱 선수, 산악회 활동, 히말라야 등정 등 다양한 활동을 많이 했던 것을 좋게 봐줬다. 그 활동을 할 때마다 내가 우주인이 될 줄 알고 했던 걸까.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 대표는 “대학을 막 들어가던 당시 선배들이 ‘경험을 많이 해보라’는 조언을 해줬다. 그 말을 따랐다. 이제 돌이켜보면 경험이 쌓여서 오늘의 나를 만들어줬다”며 “여러분도 학생일 때 보다 많은 활동을 해 보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비록 우주에는 가지 못하고 교체됐지만 “오히려 잘 됐다”고 고 대표는 말했다. 러시아에서 1년 간 보낸 훈련과정이 그의 인생을 뒤바꿨기 때문이다.
그는 공부만 하고 연구만 하고 지내느라 사회 문제나 애국심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자의 반 타의 반 대한민국 대표로 외국에 나가니 한국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고 대표는 “러시아에서 만난 사람들도 나를 고산이라는 개인으로 인식하기 전에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곧 우리나라라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지냈다”고 떠올렸다.
그가 한 가지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가 훈련생들과 함께 얄타 회담이 열렸던 리비디아궁에 갔을 때였다. 얄타회담은 제2차 세계대전 종반에 미국·영국·소련이 독일의 패전과 그 관리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 회담으로 우리나라 분단의 계기가 됐다.
고 대표는 “같이 간 훈련생들은 미국에서, 러시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당연히 자랑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기념사진 찍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기분도 아니었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서 ‘한국사람’이라는 정체성에 눈 뜨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된 훈련 과정에 그를 견디게 한 건 다름 아닌 ‘꿈’이었다.
그는 “‘우주에 가면 뭘 해야 하나’ 그 생각 하나로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내 꿈을 위해서 내 모든 걸 쏟아 부을 수 있는 경험을 했다”며 “꿈을 가지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실은 와 닿지 않았다. 꿈 없어도 한 평생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경험해보니 내가 정말 원하는 모습으로 살면 100% 내 존재로 살 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교체돼 나오면서 그는 한국에 돌아가면 뭘 할까 고민했다. 뜻밖에 그가 향한 곳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고 대표는 “국민들의 낸 세금으로 훈련도 받았기에 뭔가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주인 배출의 의미가 과학기술의 진보 측면보다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넓혀주는 측면이 더 크다고 생각한 것도 한 몫 했다”고 선택의 배경을 밝혔다.
일하던 중 공부 필요하다 여겨 미국에 유학을 떠났던 그는 지난해 돌연 귀국해 회사를 차렸다. 타이드 인스티튜트(TIDE Institute)라는 비영리 창업센터다. ‘타이드 인스티튜트’(TIDE INSTITUTE)를 차렸다.
이 단체를 설립하게 된 건 미국 서부 실리콘밸리 안에 싱귤래리티 대학에서 연수를 다녀오며 틔운 발상에서 비롯됐다. 올해로 문 연지 4년 째인 이곳은 대학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10주짜리 미션 스쿨이다.
고 대표는 “이곳에서 ‘10주 동안 10년 이내 10억 명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라’는 미션이 주어진다. 보통 사업이라고 하면 어디에 틈새시장이 있는지, 어디에서 이윤을 낼 수 있는지 이런 걸 고민하는데 여기서는 가치 중심으로 고민해는 신선한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에서 공부하기 전까진 일자리 없으니 창업하란 말은 뜬구름 같은 소리라고 여겼다. 세상에 이런 거대한 문제점이 있고, 이런 메가트렌드가 있다는 걸 깨닫고선 내게도 창업하고 싶은 마음이 부풀었다.” 이것이 고 대표가 타이드 인스티튜트를 설립한 계기였다.
작년 2월에 법인을 설립해 7월부터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1년 남짓한 시간이다. 그동안 ‘타이드 아카데미’, ‘타이드 인사이트’, ‘타이드 스타트업 스프링보드’, ‘타이드 워크숍’ 등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청년들이 마음껏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마지막으로 고 대표는 앞으로의 꿈을 밝혔다. “많은 분들이 우주인으로 뽑혔는데 우주에 대한 꿈은 접었느냐 묻는다.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 내가 우주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확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가 한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미국에서 민간 우주선이 개발됐다. 피터 디어맨디스라는 미국인이 이끄는 엑스 프라이즈 재단에서다. 자신들이 아폴로의 부하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2억 짜리 우주 관광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런 사례를 한국에서도 만드는 게 내 꿈”이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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