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어릴 때 비행기 플라스틱 모델 조립에 푹 빠졌었다. 당시 문방구·완구점은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실전에 투입됐던 전투기·폭격기·수송기의 모형 부품을 상자에 담아 팔곤 했다. 자잘한 부품을 틀에서 잘라내 접착제를 발라 붙이면서 모양을 완성해 나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프로펠러 엔진, 제트 엔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한 채 비행기라는 기계의 겉모습만 짜 맞추는 아주 초보적인 만들기 수준이었다.
가끔 초침·분침이 째깍대는 태엽 시계나 트랜지스터라디오 속이 궁금해 부모님 몰래 분해도 해봤다. 그런데 나의 호기심은 거기까지였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무엇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면 대학 잘 가는 인문계 고등학교 가는 데 지장이 있다는 쪽으로 흘렀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대치동 학원가에는 아두이노(오픈소스 소형 컴퓨터 기판)와 스크래치 프로그램 언어로 모터를 조종하는 메이커 수업이 성업 중이다. 어린이용 완구 블록 제조사 ‘레고’는 아이와 아빠가 함께 조립해 움직일 수 있는 전자 장난감 ‘마인드 스톰’을 출시해 히트를 쳤다. 많은 학교가 학생이 원하는 것을 다양한 도구와 재료를 이용해 만들어보는 ‘메이커’ 수업을 방과 후 과정으로 채택하고 있다.
필자는 2017년 명견만리 ‘로봇시대, 인간의 자리는’ 편을 만들면서 메이커 운동의 현장을 취재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만들기 운동’ 열풍이 일었다. 2000년대 이전에는 간단한 목공·철공 기술을 익혀 가구나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보기(Do it yourself)’가 주류였다. 최근의 메이커 운동은 아두이노, 라즈베리 파이 같은 소형 컴퓨터 기판과 프로그래밍 언어, 인터넷을 활용해 간단한 DIY 전자제품,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시제품을 만든다. 청소년들도 쉬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 온도·습도 센서와 실행기를 기판에 연결해 깜찍하고 기발한 물건을 만들어낸다.
전 세계적으로 테크 숍, 메이커 스페이스, 팹 랩(Fab Lab)의 이름을 가진 만들기 공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열성적인 메이커들은 함께 모여서 2~3일간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보는 대회인 ‘해커톤’과 만든 작품을 실행하고 전시하는 ‘메이커 페어’ 축제를 연다. 서울에도 세운상가에 팹랩 서울, 메이커스 큐브, 양평동에 캠퍼스 D가 문을 열었다.
오래된 공장 건물을 개조한 캠퍼스 D의 입구에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보자’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2017년 초 이곳에선 매 주말 중·고등학생이 참가하는 ‘영메이커 프로젝트’가 열렸다. 집에서 못 쓰는 가전제품·휴대폰을 가져와서 바닥에 늘어놓고 부숴보는 시간. 기계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해보고 그 안에서 다시 쓸 수 있는 부품들을 골라낸다. 그 부품을 활용해 학생들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 예전에 없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냈다.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학생들은 창의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익혔다. 만들고 싶은 것을 직접 시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자원봉사자 교사들에게 묻고 알아나갔다. 한 번의 만들기 과정이 끝나면 학생들은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주체성과 능동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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