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뭔가요?” 부스 앞에 멈춘 사람이 짧게 질문하면 영메이커는 바빠집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그 이름부터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가 어떻게 실제 물건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기 쉽게 설명해야 하거든요. 때로는 반쯤 자랑도 섞이지만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진지합니다. 크기도 모양도 쓰임도 다양한 물건을 전시 중인 부스가 120여 개 차려진 이곳은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소년중앙 영메이커 프로젝트 시즌 4에 참여한 영메이커들이 5월부터 10주 동안 뚝딱뚝딱 만들어낸 것들을 선보이는 ‘영메이커 서울 2018’이 지난 토요일 세운상가 일대에서 열렸습니다.
무더위에 입구부터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자신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영메이커들의 열정은 기온을 잊은 듯했죠. “이건 로봇 저금통이에요.” 흰색의 직사각형 플라스틱 통 같은 물건을 전시한 정수민(서울 송전초 4) 영메이커는 바로 시범을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자 LED에 불이 들어오고 중간에 튀어나온 반원 부분에 동전을 놓자 꿀꺽 삼킵니다. 동전을 모으는 취미가 생길 것 같은 저금통이었죠.
공중에 매달린 구명튜브가 보여 다가가보니 염지혁·이원기(경기도 금모래초 4) 영메이커가 ‘반짝반짝 LED 구명튜브’라고 소개했죠. “사람들이 물에 빠졌을 때 빛이 나서 눈에 잘 띄는 튜브가 있으면 쉽게 구조할 수 있을 것 같아 만들었어요.” 이원기 영메이커가 튜브 옆에 달린 스위치로 불을 켜 보였습니다. 지퍼백을 달아놓은 스위치 부분도 앞으로 완전 방수가 되도록 개선할 거라네요. 박태근(강원도 동춘천초 6) 영메이커는 도면을 그린 판넬을 가리키며 설명했습니다. “미니 에어컨을 만들려고 계획을 짰는데 부품이 일부 늦게 왔어요. 다음 주까지 완성할 거예요.”
서바이벌 게임용 방탄 헬멧과 섬광 방패를 내놓은 윤병현·이주원(경기도 정왕중 3) 영메이커는 “시간이 부족해 방패에 LED를 못 달았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알루미늄 판으로 감싼 앞부분에 LED가 켜지면 이름 그대로 섬광이 비출 것 같았죠. “헬멧도 3D 프린터로 뽑으려고 했는데 크기가 1/8 정도라 기존 헬멧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어요. 시간을 들여 제대로 완성한 다음 저희 OPP 사이트에 올릴 겁니다.”
아예 메이킹을 하고 있는 팀도 있었습니다. 김태윤·이태근(경기도 고양제일중 3) 영메이커는 무려 3D 프린터를 만들고 있었죠. “만들고 싶은 건 따로 있고요. 그걸 만드는데 필요해서 먼저 3D 프린터를 만들기로 했어요. 기존 프린터는 빌리는 시간도 짧고, 제약이 있어서요. 지금 한 30% 정도 된 것 같아요.” 같이 작업하던 이태근 영메이커의 아픈 손목을 주물러주던 김태윤 영메이커의 설명입니다. 슬쩍 물어보니 진짜 만들고 싶은 건 전동 킥보드였죠.
전시장 앞쪽 무대에선 영메이커들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박소율(경기도 송화초 4) 영메이커가 만든 누르면 불이 켜지는 침대 이야기를 듣는데, 손에 작품을 든 두 사람이 앉아 있네요. 김민규(인천 부일중 1)·민상(인천 부일중 3) 형제 영메이커는 미세먼지와 온·습도 측정기 개정판에 도전했다며 “지난번엔 아두이노를 썼고, 이번엔 라즈베리파이를 활용했는데 새 프로그램 배울 시간이 부족했어요”라고 했죠. 아두이노를 사용한 바깥 활동 경보 알리미는 수치가 높아지면 알림이 뜨는 물건이었어요.
몇몇 부스엔 ‘관람 중’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요. 빈 부스를 따라 삼삼오오 모인 곳에 가보니 김채유(인천 신정초 5) 영메이커가 만든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콩이 발판들을 뛰어 목적지로 향하는 ‘콩디세이’란 게임이었죠. 매우 길다는데, 아직 골인한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전도체를 사용한 피아노를 선보인 부스도 있었어요. 배수빈(경기도 진접초 3) 영메이커는 팔에 팔찌를 채워주더니 피아노 건반을 동물로 나타낸 종이를 눌러보라고 했죠. 그러자 정말 도레미 소리가 났어요. 팔찌를 찬 사람과 손을 잡은 사람이 눌러도 소리가 납니다. “전도체로 전기가 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수빈 영메이커는 “더 많은 음계를 넣을 것”이라고 눈을 빛냈죠.
소중 학생기자이기도 한 윤신혜(서울 전동중 1) 영메이커는 자신의 캐릭터를 활용한 제품들을 전시했어요. 안경 사과를 비롯한 바나나·오이·버섯 캐릭터로 인형과 티셔츠 등을 만들어 홍보 중이었죠. “종류는 차차 늘려갈 거고요. 만든 제품은 판매도 할 거예요.” 영메이커 사업가가 눈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바깥으로 나오니 풍선 맞추기 게임이 한창이었죠. 강민주·양유정(서울 송례초 6) 영메이커는 “축제이기도 하고 다 같이 놀 만한 이벤트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어요. 풍선이 터진 자리에 쓰인 글씨에 맞춰 선물을 줍니다. 달콤한 사탕을 입에 물고 시원한 보트 놀이를 하는 박지환(송화초 2)·오유민(성수초 2) 영메이커의 프로젝트를 구경한 뒤 체험존으로 내려갔습니다.
체험존에선 앵그리버드 날리기, 목마 타기, 거대 비눗방울 만들기 등을 할 수 있었어요.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비눗방울이 계속 터지자 전다은 멘토가 이렇게 해보라고 힌트를 주네요. 뒤쪽에선 김휘진(고양 화정중 2) 영메이커가 앵그리버드 날리기 게임을 위해 상자를 모아 쌓는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었죠.
영메이커들의 축제에 들어오는 입구는 대학생 멘토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은 주로 전시를 보러 5층으로 올라가고요, 메이커 콘퍼런스 문의도 많아요.” 체험존 옆 안내 부스를 맡은 유현석·이건모·최상원 대학생 멘토는 고등학생을 위한 영메이커 클럽에서 멘토링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활동과 병행하다 보니 서로 시간 맞추기가 힘들었어요. 영메이커 프로젝트처럼 매주 모이는 정도의 강제성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죠.” 영메이커 클럽 전시는 심재광 대학생 멘토의 진행으로 팹랩서울에서 열렸어요.
같은 시간, SE:Cloud(아세안상가 3층)에선 콘퍼런스가 한창이었습니다. 영메이커 서울 2018을 주관한 메이커 교육실천 회장인 이지선 숙명여대 교수의 ‘메이커 교육 담론’을 시작으로 시즌 4에 참여한 멘토들의 메이커 교육 이야기가 다양하게 펼쳐졌죠. 자리를 한가득 메운 부모님들은 각자 필요한 부분을 꼼꼼히 메모하고 있었어요.
이번 영메이커 프로젝트 시즌 4는 영메이커뿐 아니라 시민멘토도 함께 꾸려 나갔는데요. 영메이커들이 원하는 길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조력자(퍼실리테이터) 역할을 묵묵히 했죠. 천안에서 시흥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멘토링을 하기 위해 달려간 양규모 멘토는 “봉사하며 오히려 배운 것도 많고 힐링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애들한테 잔소리만 하던 부모님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것저것 얘기하다 보니 아이와 진실한 대화를 하게 됐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아요. 거실 한쪽을 메이커 활동 공간으로 바꿨다고 하셨죠. 자식이 생기면 메이커를 하라고 하고 싶어요.”
유아 교육을 연구하는 김현주 멘토도 메이커 교육의 가치를 이야기했죠. “어린 친구들도 스스로 만들겠다고 나서는 걸 보고 가능성을 봤어요. 초2인 수정이는 골판지 자르는 것 하나도 도와달란 말을 안 했죠. 초3 지유도 유튜브를 찾아보며 알아서 만들더라고요. 처음엔 거창한 얘기를 하다가 주변 친구들을 보며 프로젝트 수정에 나선 시원이(4학년)를 통해 메이킹을 하며 문제를 보는 관점이 바뀌고, 상황을 보는 눈이 생기는 걸 봤습니다.”
이번 페어는 더위로 조금 일찍 전시를 마무리했는데요. 김단우(경기도 광명북초 2) 영메이커는 “매주 토요일마다 만들기를 했는데 끝나서 아쉽다“며 ”시즌 5까지 기다리는 게 막막하다”고 했죠. 그러면서 다음엔 지우개 가루 청소하는 자동차를 만들 거라고 자신감을 보였어요. 한쪽에선 영메이커 프로젝트 시즌 4 수료증을 받은 뒤에도 카드보드 챌린지를 하겠다며 안재우(화성 상봉초 5) 영메이커를 비롯한 몇몇이 보드에 뭔가를 그리고 오리고 있었죠. 이지선 교수는 “마지막까지 만드는 아이들을 보니 뿌듯하다”며 “결국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게 중요해요. 메이커 활동 취지와도 맞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영메이커 페어를 준비하며 중간에 장소도 바뀌고 문제가 좀 있었는데 멘토부터 영메이커들까지 모두 열심히 도왔어요. 부모님들도 이해해 주셨고요. 사람들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죠.” 10주간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한마디는 “다 같이 하니까 되네요”였습니다. 한 사람의 메이킹 과정도 다른 영메이커의 프로젝트를 참고하고, 멘토들의 조언이 어우러지는 것처럼 말이죠. ‘다 같이 만들고 즐기고 배워서 남 주는’ 영메이커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되겠지요.
글=김현정 기자 hyeon7@joongang.co.kr, 사진=이원용(오픈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