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창조하는 ‘3D프린팅’ 스타트업 – 블로터닷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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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산책길을 따라 저 멀리 솟은 동대문 두산타워 건물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왼편으로 거대한 건물의 큰 간판을 만날 수 있다. 세월의 더께를 온몸으로 받아낸 구식 주상복합 상가건물 세운상가다. 종로 대로변으로 가면 최근 조성한 예쁜 텃밭을 보며 건물 정문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청계천에 닿은 뒤편으로 돌아가야 승강기를 탈 수 있다. 목적지는 5층, 호수는 550호. 한때 첨단 산업의 상징이었을 세운상가 한 구석에 ‘제3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3D프린터 공작소가 있다.

 

[기사 싣는 순서]

• 피규어에서 공방까지…한국의 ‘3D프린팅’ 개척자들

• 공간을 창조하는 3D프린팅 스타트업

 

목요일마다 복작복작, 종로의 ‘팹랩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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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러질 것 같은 건물이라고 말하면, 내 나이보다 많이 먹은 세운상가에 실례가 될까. 550호의 문을 열자 다른 세상이 나왔다. 창가 선반을 차지한 3D프린터와 넓은 작업 공간에 가지런히 정렬된 공구들까지, 미국에서는 창고에서도 새 사업을 잘만 꾸린다는데 세운상가 550호의 3D프린터 공작소 팹랩 서울이 꼭 ‘개러지’와 닮았다.

팹랩 서울은 타이드인스티튜트가 운영하는 3D프린터 공작소다. 우주인이 될 뻔한 고산 대표가 세운 비영리 업체다. 팹랩 서울도 비영리로 운영된다. 팹랩 서울 안에 마련된 3D프린터는 약간의 비용을 내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한 시간에 3천원. 이는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장비를 유지하고, 재료비를 대는 데 모두 쓰인단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차린 젊은 사업가나 자신이 디자인한 3D모델을 뽑아 직접 손으로 만저보고픈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팹랩 서울에 준비된 3D프린터는 플라스틱 필라멘트를 쓰는 FDM 방식의 3D프린터와 광경화성 소재를 활용하는 DLP 방식 두 종류다. FDM 장비 6대와 DLP 방식 3D프린터 2대가 준비돼 있다. 메이커봇과 울티메이커 등 국내에서도 익숙한 업체의 장비로 꾸려졌다. 3D프린터를 써보고 싶은데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들, 혹은 3D프린터가 필요한 작업을 하는데 장비를 구입하기엔 부담스러운 사용자가 방문하면 도움이 된다.

방문하기 전에 팹랩 서울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하면 편리하다. 매주 목요일은 예약 없이 누구나 무료로 3D프린터를 활용할 수 있다. 팹랩 서울이 조용히 인기를 끄는 까닭 중 하나다. 장비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뭐 하는 곳인가 싶어 구경만 하고 떠나는 이들의 발길도 최근 부쩍 늘어났단다.

 

뭘 좀 알아야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3D프린터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상주하는 3~4명의 직원으로부터 사용법을 배울 수 있다. 컴퓨터나 3D 모델 파일도 필요 없다. 팹랩 서울에서 저작권 걱정 없는 오픈소스 3D 모델을 뽑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워크숍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장비 사용법부터 노하우까지 3D프린터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교류되는 장이다. 올해 초에는 지방에 사는 한 초등학생이 엄마를 졸라 함께 방문한 적도 있단다. 덕분에 방문객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SK텔레콤의 지원을 받아 처음 문을 연 이후 최근엔 무료로 개방되는 목요일엔 20~30여명의 사용자가 팹랩 서울을 찾는다. 3D프린터는 전혀 새로운 장르라는 편견을 벗어나 천천히 대중의 관심을 먹고 자라고 있다.

 

스타트업 꿈 뽑아주는 합정동 ‘자이지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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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자이지스트 대표

 

합정동 가정집을 개조한 사무실 2층에 세든 자이지스트는 3D프린터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요리에 비유한다. 자이지스트의 3D프린터 체험 공간 이름도 ‘키친’이다. 사용자는 요리사요, 자이지스트 직원은 요리를 돕는 보조 요리사쯤 되는 셈이다. 자이지스트도 3D프린터로 작업을 해야 하는 이들이 장비를 쓸 수 있도록 돕는 업체다.

“노트북 한 대 달랑 갖고 있어도 제품 아이디어만 있으면 우리 쪽 오퍼레이터가 도움을 줄 수 있어요. 제품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3D로 디자인하는 방법부터 모형화, 최종적으로 3D프린터로 뽑는 단계까지 말이죠.”

김수민 자이지스트 대표와 자이지스트 구성원은 원래 웹과 그래픽디자인을 생업으로 삼던 이들이다. 김수민 대표는 어느 날 친구가 보여준 ‘신기한 영상’을 보고 3D프린터에 관심을 갖게 됐다. 3D프린터가 물체를 쌓아올리는 마술과도 같은 영상이었다. 2D 공간에서 디지털 작업을 하던 김수민 대표는 입체 물체를 공간으로 이끌어내는 기술에 매료됐다. 그 길로 친구 4명을 설득해 자이지스트를 차렸다.

자이지스트의 첫 번째 사업 모델은 장비와 공간을 대여하는 일이다. 자이지스트에서는 3만원을 내면, 3시간 동안 3D프린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노트북만 하나 들고 와도 자이지스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3D모델링 기법에 관해 몰라도 된다. 자이지스트의 전문분야인 덕분이다.

3D프린터로 물체를 인쇄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플라스틱 필라멘트를 녹여 제품을 밑동부터 쌓아 올리는 FDM 장비가 주를 이루는 탓에 출력에 적합한 디자인이 따로 있다. 상상만으로 구현한 3D 모델을 실제 3D프린터에 알맞게 조절해주는 일도 자이지스트의 몫이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준비 중인 이들이 주로 찾는다는 게 김수민 대표의 설명이다.

 

하드웨어 스타트업 창업자가 아니어도 자이지스트를 방문할 수 있다. 자이지스트 키친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된다. ‘자이지스트 크리에이티브 프로젝트(XCP)’는 화분이나 꽃병 만들기 프로그램으로 실제 생활에 쓸 수 있는 인테리어 소품을 직접 만들어보는 실기 수업이다. 문자를 인쇄하는 레터링, 자동차에 달면 좋은 초보운전 표지판 등이 모양도 예쁘고 반응도 좋다. 자이지스트판 문화센터 강좌인 셈이다.

키친 이후 자이지스트는 3D프린팅 산업의 플랫폼 역할을 꿈꾸고 있다. 3D프린터에 관한 정보를 한데 모아 제공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 말이다. 3D프린터를 위한 도면 공유 서비스가 될 수도 있고, 도면, 장비를 사고파는 장터가 될 수도 있다. 3D프린터 산업 전반에 관해 점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게 김수민 대표의 설명이다.

“지금은 여러 교육 현장과 의견을 나누고 있어요. 아무래도 관련 전공 학생들은 앞으로 3D프린팅 기술을 다루게 될 텐데, 교육 과정에서 미리 배우는 것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교육현장에서 3D프린팅 교육에 관한 인식이 확대되면 좋겠어요.”

 

“애완견 피규어, 3D로 영원히”…안양시 3D모픽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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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호 모픽 3D스튜디오 대표

 

3D프린터는 메모리카드로 간단히 쓸 수 있다. 3D 모델링 파일이 담긴 메모리카드를 3D프린터에 꽂으면, 작은 디스플레이에서 파일을 선택해 출력을 명령하는 구조다. 파일에는 보통 ‘STL’ 확장자가 붙는다. 문제는 무엇을 인쇄할 것인가다. 디자인을 머릿속에서 구상한다고 해도 누가 3D 모델링을 담당할 것인가도 문제로 남는다. 3D프린터는 사용법 그 자체보다는 3D모델링을 구축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모픽 3D스튜디오를 차린 박승호 대표의 사업 아이템도 여기서 출발했다.

모픽 3D스튜디오는 짧게 설명하면 동네 사진관이다. 증명사진이나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는 동네 사진관에는 카메라가 한 대 뿐이지만, 모픽 3D스튜디오에는 최소 24대의 디지털 일안반사식(DSLR) 카메라가 있다는 점만 다르다. 24대의 카메라 셔터를 동시에 눌러 피사체를 360도 각도에서 찍기 위함이다. 동네 사진관에서 출력해주는 사진은 액자에 넣을 만한 2D 사진이라면, 모픽 3D스튜디오에서 만들어주는 결과물은 3D 피규어라는 점도 차이점이다. 이를 포토스캔 방식이라고 부른다.

“광학식 스캔 방식은 장비에 드는 비용이 저렴하고, 이동이 편리하지만,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고정된 자세로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어요. 하지만 포토스캔 방식은 아주 짧은 시간에 스캔(촬영)이 끝나요. 심지어 투수의 투구폼처럼 아주 역동적인 포즈도 3D 모델로 촬영할 수 있어요.”

피사체를 직접 스캔해 3D 데이터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총처럼 생긴 광학식 3D 스캐너를 쓰는 방법이다. 이를 핸드스캐너라고 부른다. 피사체가 똑같은 포즈로 길게는 5분 가까이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수십대의 카메라를 활용해 피사체의 모든 각도를 찍는 포토스캔 방식이 있다. 피사체는 길게는 100분의 1초에서 짧게는 360분의 1초로 찍히는 카메라의 셔터 속도 만큼만 고정된 자세를 유지하면 된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나 강아지가 긴 시간 동안 똑같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순식간에 촬영이 끝나는 포토스캔 스튜디오를 마련한 박승호 대표가 첫 번째 고객으로 아이 엄마와 애견인을 고른 것도 이 때문이다.

 

“사진을 찍은 다음 데이터를 취합하는 과정을 통해 이미지를 합성하고요. 1차로 3D 데이터를 생성해요. 이렇게 만든 데이터를 3D 모델링 상용 소프트웨어로 갖고 와서 출력 전 단계까지 보정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사진에 낀 노이즈나 제대로 촬영이 이루어지지 않아 구멍이 뚫린 부분을 보정하는 단계다. 사진으로부터 얻은 3D 모델을 3D프린터가 출력하기 적당하도록 다듬는 기술도 포함된다. 박승호 대표는 모픽 3D스튜디오를 차리기 전까지 국내 유명 게임 개발업체에서 일했다. 3D 모델을 매끈하게 수정하는 작업은 일도 아니다. 완성한 3D 데이터로 12cm 정도 크기의 피규어를 뽑는 데 3시간 정도 걸린다. 최종적으로 완성한 제품에는 18~20여만원 정도의 가격을 책정했다. 1년마다 아이를 찍어 3D 성장앨범을 만들거나 애완견의 모습을 3D 피규어로 남길 수 있다.

3D프린팅 산업에서 결국 남는 것은 콘텐츠라는 게 박승호 대표의 생각이다. 3D프린터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콘텐츠라고 생각하고 있다.

“디자인이 가미된 콘텐츠만 남고, 그 안에서도 경쟁력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3D프린터는 디자인을 형상화하는 도구일 뿐인 거죠.”

박승호 대표는 모픽 3D스튜디오를 꾸린 경험을 살려 비슷한 사업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컨설턴트 사업도 제공할 계획이다. 3D모델링 기술과 스튜디오 구성이 박승호 대표의 콘텐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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